빠름의 미학, 포르쉐 911 터보

발행일자 | 2010.05.19 08:15

포르쉐 911 터보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제 변해야 한다. 911 터보는 포르쉐 가문의 기함임에도, 그 동안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의 기함인 V12 모델들과는 비교조차 당하지 못하는 취급을 받았던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리틀 페라리 급인 V8 모델에 비해서도 성능이 조금 부족하고, 가격은 훨씬 싼 차로 여겨 졌었던 것이 사실이다. 람보르기니가 베이비 람보르기니를 선보였지만 처음부터 V10 엔진을 얹고 등장했으니, 역시, 911 터보로서는 오르지 못할 나무처럼 보였다.

글,사진 / 박기돈 (RPM9.COM 팀장, twitter follow)

빠름의 미학, 포르쉐 911 터보

하지만 지난 해 등장한 최신형 포르쉐 911 터보는 가격 면에서는 여전히 페라리 V8 모델의 2/3 수준이지만, 일부 성능에서 더 뛰어난 모델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포르쉐의 기함으로서 이제는 당당히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의 기함과도 명함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가격은 여전히 절반 수준인데도 말이다.

예전과 달리 이제 포르쉐는 2인승 로드스터인 박스터와 쿠페 카이맨, SUV 카이엔, 대형 세단 파나메라 등 꽤 다양한 모델들을 생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포르쉐를 대표하는 모델은 세계 최강의 스포츠카인 911이다. 그리고 다시 911에는 무려 17가지, 혹은 그 이상의 세부모델이 존재한다. 이들 중에는 GT2와 GT3 같이 레이스의 혈통을 이어 받은 모델도 있는데, 이들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도로용 포르쉐 스포츠카는 911 터보다. 일반인들도 쉽게 운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포르쉐라고 할 수도 있겠다.

빠름의 미학, 포르쉐 911 터보

동그란 헤드램프, 완만하게 내려오는 지붕선, 떡 벌어진 엉덩이에 얹은 강력한 터보 엔진, 터보 엔진에 공기를 공급하는 옆구리의 보조개, 풀타임 4륜 구동 시스템, 그리고 커다란 날개가 돋보이는 최신형 911 터보를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이미 지난 번 포르투갈 시승기에서 자세히 이야기했듯이 신형 911 터보에는 크고 작은 수 많은 혁신들이 적용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직분사 방식이 도입된 신형 트윈터보 엔진과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적용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이루어 낸 성능상의 백미는 0~100km/h 가속 3.4초의 달성이다.

빠름의 미학, 포르쉐 911 터보

물론 성능에서 조금 부족하더라도 월등히 더 예쁘거나 또 다른 특별한 매력이 있다면 그 모델 또한 아주 매력적인 수퍼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드래그 레이스에 참가할 것도 아닌데 가속 성능 “0.몇” 초 차이가 뭐 그리 대수인가 하겠지만, 이들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기술력이고, 곧, 힘이다.

0~100km/h 가속력에서 4초대를 기록하는 것과 3초 대를 기록하는 것에는 그 위상에서 큰 차이가 있다. 물론 2초 대를 기록하는 부가티 베이론 같은 차들은 거의 절대적인 위치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3초 대라 하더라도 3.5초와 3.4초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수퍼카를 만드는 메이커들이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 튜닝한 고성능 버전을 선보일 때 겨우 0.1초 정도의 가속 성능 향상과 최고속에서 불과 몇 km/h 상승을 이루어 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만큼 이런 극한의 성능 단계에서는 불과 0.1초를 앞당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단적인 예로, 최근에 등장한, 포르쉐 역사상 가장 강력한 도로용 스포츠카인 911 GT2 RS의 경우를 보면, 더 가벼운 차체에 무려 620마력의 파워를 뿜어내고, 최고속은 330km/h에 이르지만 0~100km/h 가속은 911 터보보다 0.1초 뒤진 3.5초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주 원인은 PDK의 미적용이다.)

빠름의 미학, 포르쉐 911 터보

뉴 911 터보를 이처럼 강력하게 만든 신형 엔진은 오랫동안 911 터보에 적용되어 오던 3.6리터 수평대향 트윈터보 엔진의 배기량을 3.8리터로 늘렸고, 최신 엔진 기술인 직분사 시스템을 더했다. 물론 가솔린 엔진으로서는 최초인 VTG 역시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를 통해 최고출력은 무려 500마력에 달한다.

2년 전에 911 카레라와 카레라 S를 통해 처음 선보였던 듀얼 클러치 변속기인 7단 PDK도 911 터보에 처음 적용되었다. 내부에 두 개의 변속기를 가지고 있는 셈인 PDK는 변속 충격이 전혀 없으면서, 동력 전달 효율이 수동 변속기와 같아, 편리함에다 성능과 연비까지 동시에 잡은 변속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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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많이 알려진 PDK이지만 간단하게나마 그 구조와 원리를 한번 더 살펴 보자. PDK는 두 조의 클러치와 두 조의 기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클러치는 동심원 형태로 바깥쪽에 한 조, 안쪽에 또 한 조의 디스크들로 구성되어 있고, 기어는 왼쪽에 2, 4, 6단의 기어들이, 오른쪽에는 1, 3, 5, 7단과 후진 기어들이 조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큰 동심원 형태로 되어 있는 바깥쪽의 클러치는 오른쪽 기어들과, 안쪽의 클러치는 왼쪽 기어들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PDK안에는 두 개의 독립적인 변속기가 들어있는 셈이다.

PDK는 우선 출발과 함께 바깥쪽의 클러치가 기어부 우측의 1단 기어를 물고 주행을 시작하면, 자동으로 기어부 좌측에서는 2단 기어를 선택한 후 그것과 연결될 안쪽 클러치를 열고 대기하게 된다. 1단에서 2단으로 변속될 때는 1단이 연결된 바깥쪽 클러치를 끊음과 동시에 2단이 선택되어 있는 안쪽 클러치가 연결된다. 기존 수동 변속기처럼 기어를 바꾸기 위해 동력을 끊었다가 다시 연결하는 동작이 없다. 안쪽 클러치가 2단 기어를 물고 주행을 시작하면 다시 기어부 우측에서는 3단 기어가 미리 선택되고 클러치는 열린 상태로 변속을 기다리게 된다. 2단에서 3단으로 변속될 때도 마찬가지로 2단과 연결되어 있는 안쪽 클러치를 끊음과 동시에 3단이 선택되어 있는 바깥쪽 클러치가 연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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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두 개의 클러치가 다음에 연결될 기어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한 개의 클러치를 끊음과 동시에 다른 기어의 클러치를 연결시키므로 변속이 빠를 뿐 아니라 매끄러울 수 밖에 없다. 감속 시는 그 반대 과정이 이루어진다. 단, 기어가 순차적으로 변속되지 않고 운전자에 의해 두 단을 한꺼번에 변속하는 홀수 변속, 혹은 짝수 변속을 해야 할 경우에는 클러치를 끊고 기어를 바꾸고 클러치를 연결해 줘야 하므로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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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K의 적용과 함께 도입된 것이 바로 론치 컨트롤이다. 기존의 스포츠 플러스 기능과 연결된 론치 컨트롤을 사용하면 효과적으로 강력하게 차를 발사 시킬 수 있다. 3.4초 만에 100km/h까지 가속하려면, 스포츠 플러스 버튼을 누르고,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오른 발로 엑셀을 끝까지 밟는다. 그러면 회전수가 상승하다가 4,000rpm에 도달해서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회전수를 유지하는데, 이 때 스티어링 오른쪽에는 론치 컨트롤 경고등에 불이 들어온다. 이 상태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기만 하면, 그 즉시 로켓과 같은 폭발적인 가속력을 맛보게 된다. 가속력은 말 그대로 폭발적이며, 마치 앞쪽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력하게 돌진한다.

그런데, 론치 컨트롤을 사용하면 아주 순간순간 휠 스핀이 일어나고, 전자 제어 시스템이 이를 통제하면서 거의 리니어하게 가속이 이루어져 실제 측정 수치는 더 빠르게 나오지만, 몸으로 느끼는 가속감은 솔직히 론치 컨트롤을 사용하지 않고 엑셀을 2차 방정식의 곡선처럼 약하게 시작해서 점차 강해지도록 눌렀을 때 더 자극적인 것 같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 때의 느낌은 등을 미는 느낌이 아니고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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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터보가 선보이는 빠름은 비단 0~100km/h 가속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로켓 가속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70~80km/h 정도로 주행하다 킥 다운하면 기어가 2단까지 내려가면서 엄청난 가속이 이루어지는데, 이 때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다. 200km/h까지 가속하는 데도 불과 11.3초면 끝이 나고, 최고속도는 310km/h에서 312Km/h로 끌어 올렸다.

100km/h를 7단으로 주행 할 때 회전수는 1,800rpm에 불과하다. 풀 악셀 기준으로 변속은 50, 100, 150, 210, 270에서 이루어진다. 최고속인 312km/h는 6단에서 도달한다. 이 즈음에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0~100km/h 가속 3.4초라는 제원에 비하면 312km/h의 최고속도는 조금 수수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최고속도를 높이는 대신 가속력을 경이로운 수준까지 극대화 시킨 것이 오히려 더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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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의 패들을 당겨서 기어를 변속할 수 있는 새로운 시프트 패들은 기존의 팁트로닉 대신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가장 강력한 가속이 이루어지는 출발 시에 수동모드로 시프트 패들을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수동모드에서는 회전수가 레드존에 이르면 연료 차단이 이루어 지는데, 1단에서 급 가속하면 불과 1, 2초 만에 회전수가 레드존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최적의 순간에 변속 패들을 당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시프트 패들은 주로 2, 3, 4단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게 되는 서킷에서 제 가치를 발휘한다.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크로노 패키지에 포함된 초시계를 이용하면 다양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데, 계기판 중앙에 디지털로 표시되는 속도계를 보면서 0~100km/h 가속 시간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워낙 빨리 가속되기 때문에 속도계의 숫자가 차례대로 증가하지 않고 듬성듬성 건너뛰면서 표시되다 보니, 정확하게 100km/h 도달 시점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는 굳이 911 터보가 아니고 카레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빠름의 미학, 포르쉐 911 터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강렬한 노란색과 참 잘 어울리는 노란색 캘리퍼는 옵션으로 장착한 PCCB(포르쉐 콤포지트 세라믹 브레이크)의 상징이다. 극한의 성능을 요구하는 레이싱카에서 가져온 PCCB의 강력한 브레이크 성능은 911 터보를 극한의 속도로 내몰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이처럼 강력한 스포츠카인 포르쉐 911 터보에도 일상적인 사용에 무리가 없을 정도의 다양한 편의성이 확보되었다. 서스펜션을 노멀 모드로 선택하면 조금 더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하고, 멋진 사운드를 제공하는 보스 오디오에 아이팟이나 아이폰을 연결해 간편하게 음악을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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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팟을 연결하면 자체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선곡해서 들을 수 있어서 편리하긴 하지만 음질은 CD만 못하다. 보스 오디오의 강렬한 비트가 다소 줄어들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냥 편하게 들을 음악은 아이팟으로, 그리고 특별히 아끼는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CD를 이용하는 게 좋겠다. 물론 MP3 파일이라 하더라도 CD를 이용하는 편이 더 낫다는 이야기다.

최대 15도까지 회전하면서 진행 방향을 밝히는 코너링 라이트와 국내에서 장착한 터치 스크린 네비게이션도 마련되어 있다. 네비게이션은 해상도가 최신 고해상도는 아니지만 터치 스크린이 제대로 지원되므로 편의성에서 크게 뒤지지는 않는다.

빠름의 미학, 포르쉐 911 터보

더욱이 이처럼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는 스포츠카로서는 드물게 최신 포르쉐들은 일상적인 주행에서 뛰어난 연비를 기록한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포르쉐 911 터보는 최첨단 기술의 뒷받침 하에 일반일들도 쉽게 고성능을 즐길 수 있는 극한의 스포츠카다. 특히 이번 최신형은 확실하게 차별화된 가속력으로 진정한 빠름의 미학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빠름의 미학, 포르쉐 911 터보
빠름의 미학, 포르쉐 911 터보
포르쉐 911 터보 시승기 고화질 갤러리
<포르쉐 911 터보 시승기 고화질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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