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코리아가 최근 출시한 ‘320d 그란 투리스모(Gran Turismo)’를 시승했다. 지난 6월 7일 사전 시승행사와 함께 예약을 받기 시작했고 7월 1일부터 공식 고객인도를 진행하고 있는 차다.
‘3시리즈 GT’라고도 부르는 이 차는 ‘5시리즈 그란 투리스모(GT)’의 콘셉트를 이었다. 3시리즈 세단보다 지붕을 높이되, 뒷유리를 길게 빼고 트렁크덮개를 짧게 하는 등 스포티한 쿠페의 스타일 공식을 섞은 것이 외관상 특징이다. 시리즈 2탄이라 그런지 외관의 어색함은 5보다 많이 줄었다. 따로 세워놓고 전측면에서 보면 ‘4시리즈’쯤의 세단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
하지만 마침 320d 세단과 미니 컨트리맨 사이에 주차된 걸 보니 지붕 높이가 ‘도레미’다. 3시리즈와 유사한 듯 보이는 얼굴은 의외로 꽤 다르기도 하다. 위아래로 늘리되 어색함이 없도록 구성요소들을 잘 비례시켰다. 가령 헤드램프의 눈 트임 부분이 굵고 키드니 그릴도 넓다. 덕분에 기존 3시리즈보다 시원시원한 맛이 있다. 앞바퀴 뒤의 장식처럼 부피감을 덜어내기 위한 요소도 넣었다.
측면 라인은 5GT의 축소판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에서 느껴지는 듬직함이나 강한 인상이 부족하다. 단순히 차 크기가 더 작아서라기 보단 지향점이 다른 듯하다. ‘못생겼어도 존재감은 강했던’ 5GT의 둔한 느낌을 덜어냈지만 세단이나 투어링보다 멋지다곤 말하기 어렵다. 시승차의 색상이나 작아 보이는 휠도 수수한 느낌에 한 몫 했을 것이다.
BMW의 ‘다른 쿠페들’처럼 도어 윈도우엔 프레임이 없다. 문을 여닫다 보면 아우디 스포트백이나 벤츠의 CLS 슈팅브레이크를 탈 때와는 달리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어지는 부분이었다. 물론 상체가 가볍고 깔끔하게 보이는 장점은 있다. 특히 뒷좌석 도어의 유리창이 분할되지 않아 깔끔하다. (아쉽지만 끝까지 내리지는 못한다.)
짤록한 트렁크는 의외로 어색하지 않다. 테일램프 등 구성요소들이 앞모습보다도 더 3시리즈 세단을 닮아 친숙하다. 5GT에 없었던 가동식 리어스포일러도 달렸다. 속도에 따라 자동으로 오르내리며, 운전자가 조작할 수도 있다. 그 버튼은 생뚱맞아 보이는 위치에 있다. ‘오르내린다’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윈도우 스위치들과 나란히 놓인 것. 누르고 있으면 높이가 바뀌면서 각도가 꺾이는 모습이 재미있다.
테일게이트는 전동으로 열리지만 5GT와 달리 뒷유리 부분을 그냥 둔 채 테일램프 쪽 입구만 열순 없다. 뒷유리 너머로 보이는 테일게이트 안쪽 기둥이 두터워 오해했다. 리어와이퍼가 있어야 자연스러울 것 같기도 한데 달리진 않았다.
유리 아래를 기준으로 하는 기본 적재 용량은 세단보다 40리터 넓은 520리터다. 3시리즈 투어링(왜건)의 495리터보다도 조금이나마 더 크다. 40:20:40으로 분할되는 등받이를 접었을 때의 최대 용량도 투어링의 1,500리터보다 큰 1,600리터를 제시하고 있다. 뒷유리 각도로 인한 손해를 전체적인 높이의 여유로 만회하는 모양이다. 보기와 달리 차체 길이도 투어링보다 20cm나 더 길긴 하다.
지붕과 뒷유리 각도로 인해 뒷좌석을 세운상태에서 높은, 혹은 많은 물건을 싣고자 할 때는 투어링보다 불리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지붕이 높고 개구부가 파인 것은 짐 부리기를 용이하게 하는 장점이다. 투어링과 마찬가지로 바닥판 아래에는 스페어타이어 대신 추가 수납공간이 있다.
3GT의 장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적재공간보다도 뒷좌석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세단보다 110mm늘어난 2,920mm의 휠베이스는 5시리즈 세단보다 48mm 짧은 것임과 동시에 BMW가 중국시장에서 판매하는 3시리즈 롱버전의 것과 동일한 수치이기도 하다. 3GT는 앉는 자세까지 높이 설정돼 있기 때문에 공간감은 5시리즈 못지않다. 타고 내리기가 더 편한 것은 덤이다.
제원상 3GT의 차체는 투어링보다 79mm 더 높다. 다리공간은 70mm 늘었다. 세단도 이번 세대로 넘어오면서 뒷좌석 공간이 적잖이 확대돼 기존 모델의 불만요소를 해소했지만, 공간 여유를 중시하는 이들이라면 3GT가 제공하는 차이에 현혹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운전석은 기존 3시리즈의 익숙한 분위기, 혹은 부품 그대로다. 다만 위아래로 늘어난 느낌이 외부에서부터 이어진다. 시트를 최대한 낮추면 실내 바닥이 의외로 너무 가깝게 다가온다. 세단과 차이가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하지만 320d 세단과 나란히 세워놓고 비교해보니 타고 내리는 자세에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수치상으로는 3GT의 시트 위치가 59mm 높다고 한다.
시트를 어느 정도 높여도 전방 시야가 세단보다 더 좋다는 장점은 쉽게 느껴지지 않지만, 차의 다른 부분들과 함께 ‘그란 투리스모’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장거리 이동의 편안함을 제공할 요소다. 여담이지만, 앞유리 너머로 보이는 보닛 형상이 3시리즈 세단과 꽤 다른 것도 눈에 띈다.
시승차는 320d GT의 두 가지 트림 중 기본형(5,430만원). 실내사양은 대체로 320d세단의 표준형(4,760만원)에 가깝다. 가죽 재질이 투박하고 키리스 엔트리나 통풍 시트, 요추받침 등의 기능이 없다. 심지어 실내등만 있고 독서등이 없다. 하지만 HUD, 파노라마 선루프를 갖췄다.
럭셔리 트림(6,050만원)으로 가면 운전대에 은색 장식이 더해지고 다코타 가죽 마감, 하만카돈 오디오, 라이트 패키지가 적용돼 실내가 한결 화사해진다. 컴포트 액세스와 운전대 열선, 뒷좌석 열선, (뒷범퍼 아래쪽에 발을 갖다 대면 트렁크를 열어주는) 스마트 오프너 등이 추가돼 편의성과 안락성도 높아진다.
참고로, 320d 투어링의 가격은 기본형 5,020만원, xDrive 5,380만원, M Sport Edition 5,800만원이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니 안전벨트가 살짝 더 감겼다가 느슨해지면서 첨단 안전장비의 존재를 알린다. 지하 주차장의 과속방지턱을 넘자 뒷자리에 탄 320d 세단의 오너가 불평을 쏟아내긴 했지만 운전석에서 느끼는 승차감은 예상 이상으로 부드러웠다. 늘어난 휠베이스 외에 시승차의 17인치 휠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럭셔리 트림엔 18인치 휠이 적용된다.)
일상주행에선 상대적으로 늘어난 부피나 무게도 별달리 신경 쓰이지 않는다. 스포츠모드가 아닌 이상 운전대가 저속에서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서도 앞머리를 재빠르게 움직여준다. 다만 타이어 비명이 빈번하다. 시승차는 피렐리 신투라토 P7(225/55R17) 런플랫 타이어를 끼웠다.
세단부터 디젤엔진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수입차 시장은 GT에게 다행이다. 320i였다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320d는 GT에서도 풍족한 느낌이다. 184마력, 38.8kg·m의 엔진 힘과 8단 자동변속기는 모자람 없는 가뿐한 템포로 불어난 덩치를 밀어준다. 0-100km/h 가속은 투어링의 7.1초보다 살짝 처지는 7.9초지만 체감성능은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컨트롤을 ECO PLUS에 둘 경우엔 반응이 더디긴 하다. 대신 이 모드에선 열심히 아낀 연료로 얼마나 더 주행할 수 있게 됐는지를 계기판에 보여주니 참을 맛이 난다. 공인연비는 16.2km/l로, 세단의 18.5km/l나 투어링의 17.5km/l와 비교되나 아쉬운 수준은 아니다.
가솔린 대비 시끄럽고 진동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BMW디젤은 특히 무심하다. 요즘 같은 때엔 오토 스타트 스톱으로 시동이 꺼졌다가도 실내온도를 낮게 유지하느라 얼마 못 버티고 재시동이 걸리곤 하는데, 신호대기 중에 다른 차들 사이에서 그러면 꽤 민망할 정도로 소리가 크고 차체가 덜컹거린다. 직전에 시승한 훨씬 비싼 벤츠 디젤차도 만만치 않았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3시리즈 세단보단 조금 나은가 싶기도 하지만 5시리즈보단 확실히 부족하다. 주행 중의 엔진 소리는 걸걸한 한편으로 스포티함을 즐길 수 있는 음색이다.
5시리즈 그란투리스모는 오너용 5시리즈와 쇼퍼드리븐용 7시리즈의 경계에서 갈등하던 수요를 쉽게 빨아들일 수 있는 특성들을 내세워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3시리즈 그란투리스모도 한 단계 윗급 차의 공간과 그 이상의 실용성을 제공한다는 점은 같으나 그 ‘경계’가 희미하며, 불과 수백만 원의 차이로 동일 엔진 및 연비(16.4km/l)의 5시리즈 세단(520d 6,200만원)을 살 수 있단 사실은 불리하게 작용할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좌석과 뒷좌석, 적재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패키징의 장점들은 오롯이 이 차만의 것이니 틈새모델로서의 의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글, 사진 / 민병권 RPM9기자 bkm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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