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O 26262 모르면 급발진 피해 무방비… 기능안전 국제표준 중요성 인식 절실
토요타가 사상 처음으로 미국에서 급발진 배상 판결을 받은 가운데 국내 자동차 업계의 급발진 대응 체계는 더욱 부실한 것으로 지적됐다. 천문학적인 배상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국제표준에 맞게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28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 업계는 해외에서 급발진 소송에 휘말릴 경우 토요타 사례보다 더 큰 피해를 볼 우려가 큰 것으로 지적됐다.
토요타는 이번 `캠리 판결`로 피해자 측과 300만달러에 합의했다. 토요타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합의에 나선 것은 법원 측이 전장부품의 소프트웨어(SW) 결함을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동안 급발진 원인으로 차량 전자제어장치(ECU) 임베디드 SW 오류가 수없이 지적됐으나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토요타가 캠리 SW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했다. SW를 포함한 차량 전장부품의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든 과정에서 최신 과학기술을 사용해 기능안전을 구현했다는 것을 문서로 증명하도록 한 `기능안전 국제표준(ISO 26262)`이 2011년 제정됐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에서 문제가 된 캠리는 2005년 생산된 차여서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았다. 미국과 국내 제조물 책임법에서는 제조사가 최신 과학기술을 사용해 최대한 제품을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입증하면 배상 책임을 면해주거나 경감해준다.
문제는 앞으로다. BMW, 토요타 등 선진 완성차 업체들은 제조물 책임법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2000년대 말부터 ISO 26262를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다. 캠리 사례처럼 이미 생산된 차는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생산되는 차는 ISO 26262 규정에 따라 기능안전을 철저히 증명하기로 한 것이다. 이 업체들은 이미 ISO 26262를 신차 개발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 등 국내 제조사는 선진 업체에 비해 4년 이상 ISO 26262 도입이 늦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800페이지 남짓한 ISO 26262 전문을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가조차 거의 없는 형편이라는 게 관련 업계 설명이다. 전장부품 비중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급발진 사태가 터지면 회사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는 천문학적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국내 한 ISO 26262 전문가는 “미국은 징벌적 배상과 집단소송제가 있어 제조사가 무결함을 증명하지 못하면 엄청난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면서 “이번 토요타 캠리 판결이 국내에 ISO 26262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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