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욱 연출, 주화미 극본의 tvN 월화드라마 ‘내성적인 보스’ 제2화는 극도로 내성적인 보스 은환기(연우진 분)가 비서 김교리(전효성 분)에게 가혹 행위와 갑질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모습을 보여줬다.
은환기 캐릭터와 김교리 캐릭터가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닌, 현실에서 충분히 존재하는 캐릭터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이 겪는 내면의 고통과 갈등은 다큐멘터리 작품 이상으로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 높은 지위, 믿을 수 있는 백그라운드를 가진 보스가 아닌, 힘없는 사람이 이런 일을 겪었다면?
‘내성적인 보스’가 제2화에서 은환기가 겪은 오해를 힘없는 사람이 겪었다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극소심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큰 소리로 항변했을 것인데 그렇지도 못 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한 잘못된 말을 결국 무기력하게 시인하며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드라마가 원하는 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은환기와 김교리를 보며 극소심한 사람의 심경과 입장을 생각하게 된다. 채지혜(한채아 분) 또한 죽을 만큼 아픈데도 신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채로운(박혜수 분)의 언니이다. 언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왜 죽었는지 동생은 아직도 알지 못한다.
실제로도 극소심한 사람, 극도로 내성적인 사람의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마음과 아픔을 제대로 모를 가능성이 많다. ‘내성적인 보스’는 극소심한 캐릭터를 약간은 희화적인 캐릭터로 표현한다. 빠른 전개 속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를 염두에 뒀기 때문인지의 여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제1화에 이어 제2화를 시청하면, 무기력, 만성피로를 앓고 있는 김비서 또한 은환기 못지않게 극소심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은환기와 김비서는 모두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캐릭터이다. 두 캐릭터의 성장과 발전을 기대해본다.
은환기의 아버지 은복동(김응수 분)은 은환기의 모습을 보며 재촉하고 답답해한다. 현실에서도 이런 경우 조금만 서서히 기다려줄 수 있는 아량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어떤 이유로든 세상으로부터 숨으려는 사람에게 다그치게 되면 더욱 숨을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세상 속에서 무척 활동적인 사람은 이런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성적인 보스’의 은복동처럼.
◇ 빠른 전개로 인해 구성이 촘촘하지 못하게 보일 수도 있다
화장실 벽을 사이에 두고 은환기와 채로운은 마치 고해성사하는 분위기로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은환기에 대한 채로운의 궁금함, 설레임, 기대, 상상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은 시청자들의 성향에 따라서 뜬금없거나 작위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은 시나리오가 어설프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빠른 전개 속에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다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제1화의 화려함은 제2화의 말 못하는 슬픔으로 이어졌는데, 시청자들이 감정이입을 할 만하면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는 빠른 전개가 아직은 깊은 공감을 얻지 못한 채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제1화와 제2화에서 빠른 전개를 한 후, 차츰 친절하게 알려주며 ‘내성적인 보스’가 시청자들과 감정의 진도를 맞출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김병만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장면도 무척 재미있게 표현될 수 있었는데, 갈 길이 바쁜 상황에서 등장한 김병만이 그냥 단역처럼 느껴진 점은 아쉽다.
드라마를 보면 오해를 유발하는 상황들을 일부러 만드는 경우가 있다. 등장인물 중 한두 명과 시청자들은 알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경우를 만들어 시청자들을 드라마의 주인처럼 몰입시키는 방법인데, ‘내성적인 보스’는 빠른 전개로 말미암아 이런 면이 크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 자세히 살펴보면 치밀한 디테일을 포함하고 있다
빠른 전개 속에 펼쳐진 ‘내성적인 보스’의 암시와 복선들은 추후 스토리텔링과 감정이입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제1화에서는 은환기가 초대형 오페라 홍보 경쟁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무척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모습이 나왔다.
극소심한 은둔형 보스가 누구보다도 현실적인 제안을 한다는 것이 뜬금없거나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제2화까지 은환기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모습을 숨기면서 다니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직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통의 아이콘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도 민의를 잘 파악하고 있기에, 프레젠테이션에 실질적인 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내성적인 보스’는 빠른 전개 속에 말랑말랑하게 진행되는 것 같지만, 치밀한 인과관계를 내포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속단하기보다는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성적인 보스’는 코믹, 멜로, 로맨스를 장착하고 있으면서도,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 소외된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갖는다.
연우진은 진한 내면을 표현하는 연기를 보여주는데, 어눌한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훅 매력적인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마음속을 두드린다. 박혜수는 얼굴 표정에 무척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효율적으로 표정연기를 하는데, 이런 부분 역시 빠른 전개 속에 휙 지나가기에 제대로 음미하며 느낄 시간이 부족하다.
제1화, 제2화에서의 빠른 전개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기 전에 시청자들과 공감의 진도를 맞춘다면, ‘내성적인 보스’는 사람의 내면을 건드리면서 화려한 외면도 함께 하는 공감의 화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불통의 아이콘 은환기가 소통 로맨스를 만드는 날, 그날은 ‘내성적인 보스’ 게시판이 흥분한 시청자들의 호평으로 가득 찬 날이 될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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