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름 감독의 ‘목욕’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새벽 두 시가 돼야 문을 열고, 새벽 다섯 시에 영업을 종료하는 목욕탕이 있다. 목욕탕에서 일하는 여자(박세인 분)는 울기만 하고 목욕탕을 나가지는 않는 소녀(이다빈 분)를 내보내려고 마음먹는다.
◇ 모두 잠든 시간에 영업을 시작하는 목욕탕
“모두 잠든 시간, 그제야 불을 켜고 손님을 받는 목욕탕이 있다. 모든 기억이 씻기고 사라지는 곳. 오늘도 손님들은 이곳에 온다.”라는 내레이션은 영화가 펼쳐지는 장소와 시간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밝게 웃는 웃음소리로 영화는 시작했지만, 웃음소리를 들으면서도 목욕탕 카운터를 지키는 여자는 웃지 못한다. 웃지 않는 것일까? 웃을 수 없는 것일까? 그녀의 표정을 보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데 나만 행복하지 않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 마음의 상처까지 씻을 수 있다면?
‘목욕’의 목욕탕에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소녀가 남아있다. 다른 손님들이 돌아가고 난 시각에도 상처가 많은 소녀는 상처를 씻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뒤돌아 앉아 있다. 소녀의 개인적인 아픔은 세상과 단절됐기에, 목욕탕의 여자를 제외하면 세상에서 아무도 소녀의 아픔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었다면. 개인적인 아픔보다는 개인적인 일탈이나 반항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이만큼 선입견은 같은 상황도 다르게 볼 수 있는데, 세상이 목욕탕에 홀로 남은 소녀를 바라보는 모습도 있는 그대로가 아닐 수 있다.
목욕탕에서 씻지도 못하고 목욕탕을 나가지도 못하는 소녀가, 마음의 상처까지 씻을 수 있는 기회와 계기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목욕탕의 여자는 소녀를 내보내기 위해 소녀를 씻겨주려고 한다.
◇ 목욕탕 밖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상처는 스스로 치유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는 것을 감독은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픔이 있을 때 힘을 내서 딛고 일어서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척 긍정적인 사람들이거나, 뼛속까지 스며든 아픔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사람들은 정말 큰 상처를 받으면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해진다. 극복이 아닌 버팀, 생존만으로도 격려 받을 수 있는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소녀의 행동에 대해 마음속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소녀가 목욕탕 밖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여자는 소녀의 탈출을 극적으로 도울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나는 목욕탕을 탈출할 수 있을까? 세상은 나의 탈출을 돕거나 응원할까?’라는 질문형 대답에까지 이르면, ‘목욕’에서의 여자처럼 내게 관심을 갖고 나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은 누구일까 찾게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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