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제광 감독의 ‘종합보험’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제목과 초반 뉘앙스로 영화의 흐름을 대략 짐작할 수 있는데, 관객들을 믿게 만든 후 다시 길을 찾아가는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 이미지적으로 구축하는 여자 캐릭터
영화는 “나는 오늘 결심했다, 내 남편을 죽여버리겠다고.”라는 여자(조은주 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카메라는 한동안 여자의 뒷모습을 따라가는데, 어두운 밤이기 때문에 여자가 뒤돌아봐도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여자는 흥신소에서 처음 정면의 얼굴을 드러낸다.
어둠 속에서 앞모습을 보이지 않거나, 보여주더라도 잘 알 수 없도록 보여줘 영화 초반부터 여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방법이 주목된다. 어둠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밝은 곳에서는 잘 보이는 여자의 얼굴과, 숨겨져 있을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드러나면 너무 빤히 보이는 여자의 계획은 같은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
◇ 서로 속고 속이기, 지긋지긋하게 싫어하기
여자는 남편(신재훈 분)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한다.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는 이유는 명쾌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다만, 조은주의 목소리와 표정은 정말 싫긴 싫구나 싶게 생각하도록 만든다.
‘종합보험’은 알면서도 속아주기, 속아주는 척하면서 다시 속이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내가 모든 판을 제어하는 것 같지만, 내 계획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또한 내 계획을 모두 알려준 사람도 있다. 서로 속고 속이기의 연속은 마치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보는 듯하다.
◇ 비밀을 지킬 것인가? 나의 이익을 위해 비밀 따윈 의미 없는 것일까?
‘종합보험’의 창수(현봉식 분)를 보면 흥신소뿐만 아니라 변호사, 의사, 세무사 등을 찾은 사람들의 비밀 보장에 대해서까지 확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의뢰인의 의뢰뿐만 아니라 의뢰인의 비밀은 나의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종합보험’을 보면 연상된다.
어떤 사람들은 담당 변호사, 의사, 세무사 등을 선정할 때 아는 사람이 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어떤 사람들은 아는 사람일 경우 오히려 비밀유지가 어렵다고 말한다.
모르는 사람일 경우 그를 통해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사람도 나와 모르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으니, 내 비밀을 들어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연예인도 아닌데 굳이 모르는 제3자의 이야기를 전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반면에 담당 변호사, 의사, 세무사 등이 원래 아는 사람일 경우, 같이 아는 또 다른 사람에게 비밀을 공유할 수 있고, 그렇게 몇 번 반복되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 돼 버리는 것이다. ‘종합보험’을 보면 주변 사람들을 모두 경계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돼 매우 슬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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