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순규 감독의 ‘첩첩산중’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영화는 제목처럼 첩첩산중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첩첩산중에서 뭔 일이 발생할까 궁금해하고 있으면, 영화 속 등장인물들도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첩첩산중에서 뭘 하겠다는 것이냐고?
‘첩첩산중’에서 윤사장(임용순 분)은 첩첩산중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 군수(김희창 분)가 부하직원 지원(조재영 분)을 데리고 사냥 다니던 공간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발상이 만약 오래전에 있었다면 허황된 계획이었겠지만, 도심이 확장되는 요즘 트렌드에서는 충분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보인다.
◇ 카메라 워킹에 따라, 관조적 시야에서 직접 몰입한 영상으로 바뀐다
‘첩첩산중’에서 군수는 사냥하는 긴장감을 만든다. 군수의 움직임에 따라 관객들도 같이 숨죽이며 대기하다가 총소리와 함께 숨을 크게 쉴 수도 있다. 제3자적 시야로 첩첩산중을 바라보던 카메라는, 군수의 사냥 시작과 함께 1인칭 시점으로 몰입한다. 카메라 워킹의 변화와 함께 관객도 관조적인 관람에서 훅 들어가 밀착하게 될 수 있다.
◇ 내가 한 일이라고 우겼다가, 절대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한다
군수와 사냥꾼(이승철 분)은 서로 자신이 사냥물을 맞췄다고 주장한다. 그냥 우기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근거를 대며 자신이 획득한 사냥물이라는 증거를 제시한다. 그러다가 총에 맞은 사냥물은 동물이 아닌 사람인 것으로 밝혀지자,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는 근거를 만들기 시작한다.
‘첩첩산중’은 방금 전에 한 말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바로 뒤집어 버리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업적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자신이 한 것이라고 하다가, 불리해질 수 있으니 손을 빼는 이기적인 모습은 행동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 적용될 때 더욱 파급력이 커질 수 있다.
군수는 지원에게 삽질한다며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회유하기도 한다. 군수의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영화 속 군수 같은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호응해주는 것도 그 이유들 중 하나일 수 있다.
◇ 우공이산, 진짜 산을 옮긴다
‘첩첩산중’에서 윤사장은 산에 별장을 짓겠다는 것이 아니라 산에 아파트 단지를 짓겠다고 계획한다.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개념을 먼저 떠올릴 수도 있지만, 현대에서는 우공이산이 아니어도 산을 실제로 옮길 수도 산을 없앨 수도 있다.
건설회사의 택지 현장에 가면 영화에서 CG 처리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산의 일부가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을 깎여 대단지의 택지가 형성되는데, 현대판 우공이산은 예전의 우공이산과는 다른 개념이 된다.
‘첩첩산중’을 보면 시대가 변하면서 영화의 소재가 새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영화를 위한 새로운 소재는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다 핑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첩첩산중’은 보여준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 2024 rpm9.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