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최고는 하나다’ 지프 랭글러

발행일자 | 2018.09.18 19:27
[시승기] ‘최고는 하나다’ 지프 랭글러

신차 발표회장은 마치 야외 수업 무대 같았다. 잔잔히 흐르는 계곡물 위에 마련한 계단식 좌석에 앉으니 일하러 온 게 아니라 휴가를 온 것 같았다. 지난달 강원도 평창 흥정계곡에 마련된 ‘랭글러 밸리’의 풍경이다.

FCA 코리아의 파블로 로쏘 사장은 “올 뉴 랭글러를 출시하는 오늘은 한국 내 지프에게 역사적인 날”이라며 “완전히 새로워진 올 뉴 랭글러는 헤리티지에 충실한 아이코닉 디자인, 업그레이드된 독보적인 오프로드 능력, 개선된 온로드 주행 성능 그리고 첨단 안전 및 편의 사양으로 남성과 오프로더뿐만 아니라 여성과 데일리차량 오너들에게도 어필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로쏘 사장은 교재처럼 꾸며진 신형 랭글러 자료를 가리키며 마치 선생님처럼 신차의 특징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서 저 멀리서 물살을 헤치고 신형 랭글러가 등장했다. 근래 진행된 신차 발표회 중 가장 독특하고 멋진 장면에 기자들도 환호성으로 답했다.

여기에 오버랩되는 하나의 장면. 시간은 정확히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장소는 미국 루비콘 트레일로 날아간다. 당시 기자는 크라이슬러의 초청으로 지프 잼보리 행사에 참석했다. 해발 2500m의 돌산을 오로지 랭글러 하나 믿고 오르는 건 정말 무모해보였지만, 랭글러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산 정상에서 헬기가 떨어뜨려준 점심을 먹고 텐트 안에서 잤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시승기] ‘최고는 하나다’ 지프 랭글러

지프는 왜 이런 행사를 할까. 1941년 2차 대전 중에 등장한 윌리스 MB의 역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히스토리는 1945년 CJ, 1987년 YJ, 1997년 TJ, 2007년 JK를 거쳐 올해 JL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랭글러라는 이름은 YJ부터 붙이기 시작했는데, 이 모델은 외화 드라마 ‘맥가이버’에도 등장한 바 있다.

이번 시승 코스는 온로드 3㎞(10분), 오프로드 3㎞(35분) 구간으로 이뤄졌다. 랭글러의 성능을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구간이지만, 참석 매체가 많으니 어쩔 수 없었다. 대신 FCA는 원하는 기자들에 한 해 록 크롤링(rock crawling, 바위 타기)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운전 실력에 상관없이 하향 평준화된 코스로 진행되는 걸 막고자 한 의도가 괜찮아 보였다.

신형 랭글러는 곳곳이 달라졌지만 외관에는 역시 랭글러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7개의 세븐 그릴에 CJ 시리즈의 헤리티지를 계승한 헤드램프, 레니게이드를 닯은 LED 테일램프의 조화가 멋지다.

[시승기] ‘최고는 하나다’ 지프 랭글러

실내는 완전히 다른 차 같다. 다소 투박했던 구형의 흔적은 사라지고 조작성과 재질감 모두 대폭 향상시켰다.

가장 반가운 건 272마력의 직렬 4기통 2.0ℓ 가솔린 터보 엔진이다. 이전 모델만 하더라도 3.6ℓ 가솔린 엔진 또는 2.8ℓ 디젤 엔진을 얹어서 경제성이나 진동·소음 면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던 게 사실이다. 이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기에는 2.0 가솔린 터보 엔진만한 게 없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엔진은 “이 차가 지프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예전 랭글러의 기억을 한 순간에 날려버린다. 요철을 넘는 실력도 한결 낫다. 속도를 적당히 조절하면 오프로드인지 모를 정도로 스무스하게 지나간다.

[시승기] ‘최고는 하나다’ 지프 랭글러

랭글러의 진정한 매력은 역시 오프로드를 지날 때다. 이런 곳을 지날 때는 미리 4륜구동 장치를 4L로 전환하고 준비를 하는데, 신형 랭글러는 여전히 전자식이 아닌 기계식을 고집한다. “왜 전자식으로 안 바꿨냐”고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마 저희 랭글러는 앞으로 한 20년 후까지는 전자식을 쓰지 않을 겁니다. 그게 랭글러의 헤리티지니까요.”

좌우 바퀴를 연결하는 ‘스웨이드 바’의 분리 기능은 험로를 좀 더 안전하게 탈출하는 데 탁월하다. 이 기능은 버튼 하나로 조작할 수 있어 험로 탈출 후 다시 스웨이드 바를 연결하는 것도 쉽다.

미끈거리는 하천을 씩씩하게 달리는 랭글러를 보고 있으니 다시 20년 전 루비콘 트레일이 떠오른다. 당시 참석했던 일본인 기자는 바위를 넘다가 연료탱크를 깨먹어서 모두가 긴장했었다. 우리보다 1년 전에 참석했던 어느 한국인은 굳이 수동 모델을 달라고 고집하다가 내리막길에서 차가 미끄러져 크게 다치기도 했고, 우리 뒤로 1년 후에 참석한 한국인은 차가 전복되어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만큼 험난한 코스였는데, 이곳을 잘 통과한 나는 ‘Most adventures driver’에 뽑혔다.

[시승기] ‘최고는 하나다’ 지프 랭글러

추억을 떠올리니 잊고 있었던 일도 다시 떠오른다. 올해 8월 미국에서 열린 ‘루비콘 트레일 랭글러 드라이브’ 행사가 그것이다. 20년 전 한국에서 간 두 명의 기자 중 하나였던 나는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추첨에 응했으나 떨어졌다. ‘김영란법’을 지키기 위해 추첨으로 참석자를 가렸다는 게 주최 측의 설명인데, 사실 이해는 되지 않는다. 다른 어떤 시승행사보다 위험한 게 루비콘 트레일인데, 이런 행사 참석자를 어떻게 추첨으로 가린다는 말인가. 초보 운전자가 갈 경우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물론 김영란법 시행 이후 거의 모든 업체가 해외 시승행사를 추첨으로 뽑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선정할 매체를 미리 정해놨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독일 모 브랜드가 그 소문의 정점에 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운전자의 경험에 따라 참가 자격을 일부 제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지난번 페라리가 인제스피디움에서 트렉 데이 행사를 진행할 때 서킷을 얼마나 타봤는지, 페라리는 타본 적이 있는지를 물어보고 참가자를 선정한 것이 좋은 사례다.

짧은 시승회에서 신형 랭글러의 모든 기능을 타 경험해볼 수는 없었다. 안드로이드 오토, 음성인식 기능 등이 통합된 새로운 유커넥트 기능도 체험해볼 시간은 부족했다.

[시승기] ‘최고는 하나다’ 지프 랭글러

신형 랭글러의 가격은 스포츠가 4940만원, 루비콘이 5740만원, 루비콘 하이가 5840만원, 사하라가 6140만원이다. 구형은 2도어도 있었는데, 신형은 우선 4도어 가솔린 모델만 들어온다. 픽업으로도 개발되고 있는 랭글러가 한국에 소개될 경우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해진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파워트레인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4WD. 험로에서는 G 클래스보다 낫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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