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오프로드의 갑, ‘오리지널 지프’ 랭글러 루비콘

발행일자 | 2013.05.23 01:39
[시승기] 오프로드의 갑, ‘오리지널 지프’ 랭글러 루비콘

‘오리지널 지프(The Original Jeep)’, 랭글러를 시승했다. 이 차는 70여 년 전 전장을 누비기 위해 태어난 ‘짚차’의 직계 후손으로, 지프 브랜드의 여러 모델 중에서도 가장, 혹은 유일하게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지켜가고 있다.

[시승기] 오프로드의 갑, ‘오리지널 지프’ 랭글러 루비콘

국내에는 크게 세 가지 트림이 소개되어 있는데, 오프로드 정통파인 ‘루비콘(Rubicon)’, 도시 생활을 배려한 고급형 ‘사하라(Sahara)’, 그리고 보급형이자 ‘오픈카’의 감성을 즐길 수 있는 ‘스포츠(Sport)’가 있다. 다른 랭글러도 하드톱 지붕을 탈착할 수 있긴 하지만, 스포츠는 지붕이 소프트 톱이라 상대적으로 쉽게 열수 있으며, 배기량이 더 높은 3.6리터 V6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지만 가격은 가장 저렴(3,990만원)하다.

[시승기] 오프로드의 갑, ‘오리지널 지프’ 랭글러 루비콘

루비콘, 사하라는 2.8리터 4기통 디젤 엔진을 탑재하며, 기본 형태인 2도어 버전 외에 4도어 버전인 ‘언리미티드(Unlimited)’를 선택할 수 있다. 루비콘은 4,750만원, 차체가 긴 언리미티드 루비콘은 4,960만원이다. 국내에서 언리미티드로만 판매되는 사하라는 5,270만원. 그리고 언리미티드 사하라를 바탕으로 모파(Mopar) 액세서리와 소프트 톱을 적용한 모압(Moab) 에디션이 5,49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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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글러의 외관은 지프를 상징하는 원형 헤드램프와 세로로 긴 7개의 숨구멍이 뚫린 전면부, 오프로드를 내다보는 육각형의 휠 하우스 아치, 그리고 박스형 승객 탑승부 등으로 구성된다. 사하라의 경우 일반도로에서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성격을 지향해 컬러 펜더를 적용했지만, 원래 펜더는 흙이 튀고 바위에 부딪쳐도 신경이 덜 쓰이는 검정색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다. 앞 펜더의 오렌지색 깜빡이가 애교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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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하고 실용적인 설계는 승용차는 물론 여느 SUV들에서도 볼 수 없는 유별난 요소들로 나타나 있다. 랭글러는 스포츠나 모압 에디션이 아니더라도 지붕을 뗄 수 있다. 경첩과 끈으로 메달아 놓은 도어도 전용 공구로 뗄 수 있다. 앞 유리는 앞으로 접을 수 있다. 연료주입구는 외부로 노출됐다. 열쇠로 잠글 수는 있다. 보닛은 실내에서 레버를 당기는 게 아니라 외부 걸쇠를 젖혀 연다. 열쇠로 잠글 수가 없으니 지나가던 사람이 열어볼 수도 있다. 엄지로 동그란 버튼을 눌러 열어야 하는 도어 손잡이는 운전자가 왼손잡이여야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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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 요소들은 실내에도 이어진다. 지붕을 떼어내도 뼈대와 머리 위 스피커는 남는다. 뼈대에는 지퍼로 마감된 완충재를 씌웠다. 바닥은 물을 붓고 닦아낼 수 있도록 탈착식 매트와 배수마개를 적용했다. ‘JK’로 불리는 이번세대 랭글러가 나온 것은 2006년. 외관은 지금까지 이렇다할 변화가 없지만 실내는 2011년에 크게 바뀌었다. 전통적인 모습이랄 순 없지만 미래지향적이기까지 한 디자인이 한층 폭 넓은 이들에게 호감을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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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페시아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지만 운전대도 다른 지프들과 같은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예전 것은 오리지널 지프스럽기도 했지만 배에서 떼어온 것 같기도 했다. 서로 따로 놀았던 변속기 레버와 트랜스퍼 레버의 디자인이 통일된 것도 보기 좋다. 높다란 대시보드는 앞 유리 밑단보다도 위로 솟아있다. 메탈룩으로 장식된 조수석 앞 손잡이에는 ‘SINCE 1941’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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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처럼 생긴 조절 레버를 만져 시트를 높여도 머리 공간이 많이 남는다. 다만, 예상과 달리 앞 펜더는 잘 보이지 않는다. 검정색이라 그렇기도 할 것이다. 차폭을 가늠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바닥이 높아서 승하차도 편치는 않다. 천장이나 기둥에 손잡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운전석에 풋레스트가 없는 것도 어색하다. 문짝에는 스토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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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문짝인데도 원터치로 내려가는 유리창과 전동 조절 거울, 오토 도어록을 갖춘 것이 되려 신기하다. 대신, 윈도우 스위치는 센터페시아에 달렸다. 그러고 보니 생긴 것과 달리 사양이 고급이다. 오토헤드램프, 수동처럼 생긴 오토에어컨, 알파인 오디오 시스템, 후방카메라와 6.5인치 터치스크린의 유커넥트 미디어 센터, 크루즈컨트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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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에 있어서는 헐겁거나 뻑뻑하거나 여전히 투박한 것투성이지만, 오프로드 주행에 관한한 타협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우선, 랭글러는 요즘 보기 드문 ‘바디 온 프레임’, 즉 섀시 위에 차체를 얹은 구조다. 심지어 그랜드체로키를 비롯한 다른 지프들도 이 구조를 쓰지 않기에, 랭글러는 ‘역시’라고 말할 수 있다. 차축도 좌우 일체형이다. 크기를 고려하지 않으면 귀엽다고도 할 수 있는 외관이지만 하체를 들여다보면 트럭 못지않게 튼실하다. 천천히 험로를 지날 때 들려오는 금속성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운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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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스포츠는 ‘커맨드-트랙’, 루비콘은 ‘록-트랙’ 4륜구동 시스템을 쓴다. 평상시에는 후륜구동(2H)이고 운전자의 트랜스퍼 레버 조작에 따라 4H, 4L로 바뀌는 파트타임 4WD 방식인 것은 두 시스템이 같다. 4륜구동 상태에서는 앞,뒤 구동력이 50:50으로 고정된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처럼 차를 세우고 앞바퀴 허브를 잠가 줄 필요는 없지만 4L로 바꿀 때는 3~5km/h로 천천히 굴러가는 상태에서 변속기를 중립에 넣고 조작해야 한다. 2H->4H는 88km/h이하에서 주행 중 바꿀 수 있다. 4L의 권장 최고속도는 40km/h. 4H에서는 높은 속도를 낼 수 있지만 마른 노면에서 쓰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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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맨드트랙은 2.71:1, 록트랙은 4:1의 트랜스퍼 케이스 로우레인지 기어비를 제공한다. 루비콘의 경우, 4L에서는 웬만큼 가속페달을 밟아도 엔진만 웅웅 거릴 뿐 차가 튀어나가진 않는다. 이 기어비의 효과는 가령, 머리가 헤드레스트에 딱 붙을 정도의 경사로를 오르다말고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도 엔진 공회전 상태의 힘만으로 정차상태를 유지할 정도이다. 페달의 스트로크가 더욱 길게 느껴져 록 크롤링 등 오프로드 주파시의 미세 조작에도 유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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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은 차축 잠금장치 ‘액슬 록’ 기능도 갖고 있다. 16km/h이하, 4L 상태에서 버튼 아래쪽을 누르면 작동하고, 한번 누르면 뒤 차축만, 한 번 더 누르면 앞뒤 차축이 모두 잠긴다. 각 바퀴가 25%씩 구동력을 나눠 갖는 셈이다. 좌우측 바퀴가 동일하게 회전하는 만큼 이 상태에서는 회전 반경이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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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이 가진 또 하나의 무기는 ‘스웨이 바’ 시스템이다. 오프로드 주행 시 바퀴의 상하 움직임 폭을 제한하는 족쇄가 되는 스태빌라이저(안티 롤 바)를 무력화시켜주는 장치다. 4L, 30km/h 이하에서 버튼만 눌러주면 유압시스템이 스태빌라이저를 분리해 서스펜션의 스트로크를 28%(언리미티드는 33%) 증가시켜준다. 바위를 타고 협곡을 지나는 등 오프로드에서의 운신 폭을 넓혀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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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콘의 오프로드 주파 신체 조건은, 접근각 44.3도, 이탈각 40.4도, 여각 25.3도, 최저지상고 267mm 등이다. 차축 등이 워낙 단단하게 생기기도 했지만, 바닥 쪽 주요 부분에는 아예 강철 보호대를 둘렀다.

▲ 연석에 휠 긁을 염려는 없겠다. 그냥 타고 넘으면 모를까.
<▲ 연석에 휠 긁을 염려는 없겠다. 그냥 타고 넘으면 모를까.>

타이어도 특별하다. 자기 이름이 새겨진 신발이 따로 있다. 굿이어 ‘랭글러’ SR-A 올 터레인 타이어다. 요즘 SUV들은 첨부터 온로드용 타이어를 끼우고 나오는 탓에 오프로드는커녕 미끄러운 노면에서도 허당인 경우가 많은데, 이 타이어는 험로에서의 접지력을 높일 수 있는 공격적인 트레드 패턴을 자랑한다. 그만큼 일반도로에선 시끄럽고 승차감도 떨어진다. 노면이 고르지 않으면 서스펜션이 짧게 튀는 느낌과 함께 차가 출렁거리면서 똑바로 가지 않는 것 같은 무서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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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엔진만 해도, 그랜드체로키와 이 차의 소리를 비교해보면 같은 회사 제품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요즘 승용 디젤이라고 하면 정차 중에는 시끄럽다 해도 일단 구르기 시작하면 조용해지기 마련인데, 이 차는 주행할 때도 시끄럽다. 박스형 차체 때문에 바람 소리가 클 것 같지만 그 마저도 엔진 소리에 묻힐 정도다. 밟으면 꽤 나가는 것 같긴 한데, 나중에는 민망해서 못밟게 된다. 가속페달 개도나 부하에 따라 갤갤 거리기도, 굉음을 내기도 한다. 5단 자동변속기를 채용해 100km/h에서의 엔진회전수는 2,100rpm인데, 그 이상 속도를 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요란스럽지만, 그에 비해 진동은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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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던, 배기량 큰 가솔린 엔진밖에 없어 랭글러를 부담스러워했던 과거에 비하면 조건은 참 좋아졌다. 260km를 시승한 평균연비가 8.3km/l였고 공인 연비도 9.4km/l이긴 하지만 말이다. 구형 디젤과 비교하면 성능도 높아졌다. 여기 탑재된 2.8리터 디젤엔진은 3,600rpm에서 200마력의 최고출력을 내고 1,600~2,600rpm에서 46.9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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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 랭글러는 최신 돌도끼 같은 차다. 기능에 집중한, 쉽고 투박한 매력은 스포츠카로 말하자면 로터스 엘리스에 비할 수 있을 것이다. 국산차보다 못한 만듦새를 가졌어도 그다지 흠이 되지 않을 만큼 독보적인 영역을 갖고 있는 차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기대보단 가격이 비싸고, 덩치도 많이 커진 게 흠이라면 흠이다. 어차피 피아트와 한 식구가 됐으니 기아 레토나 쯤 되는 동생 하나 낳아주면 어떨는지. 컴패스처럼 도시물 너무 먹은 애 대신 말이다.

글,사진 / 민병권기자 bkmin@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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