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복 연출, 김은숙 극본의 tvN 금토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이하 ‘도깨비’) 제4회는 지금까지 중 드라마적 서정성이 가장 돋보인 회차였다. 영화같이 빠른 속도로 달려온 ‘도깨비’가 드라마가 주는 서정성에 멈춰 서게 만든 시간이다. 마치 935년을 빠르게 살아온 도깨비가 첫사랑 앞에 멈춘 것처럼.
◇ 시청자들은 모두 알고 김고은만 모르는 이야기, 마음이 움직였는데 엇갈리는 사랑
도깨비 신부(김고은 분)가 도깨비(공유 분)의 생을 마감시켜준다는 것은, 도깨비도 알고 저승사자(이동욱 분)도 알고 시청자들은 모두 알고 있지만 김고은만 모르는 이야기이다. 한 사람만 모르고 세상이 공유하는 사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한 편으로 만든다. 그리고, 모르는 한 사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또한 같이 가지게 된다.
생을 마감하기 위해 도깨비 신부를 찾고 싶었던 도깨비가 더 살고 싶어졌다. 인과관계의 모순일까? 사랑이 준 위대한 힘일까? 도깨비 신부가 돼 도깨비와 평생 같이 하고 싶은 지은탁은, 자신이 도깨비를 더 멀리 영영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진실은 모를 때가 더 마음이 편할 수 있다. ‘도깨비’에서 ‘지겨운 불멸’이라는 표현은 가진 자의 사치일까? 정말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모르는 지루함일까? 당연히 사치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만, 어쩌면 진짜 지겨울 수도 있다.
처음부터 검이 보였는데 안 보이는 척 행동한 김고은은 고백하는 방법 또한 남다르다. 불만을 말하는 것처럼 하면서 고백하는 김고은과 그것이 불만이 아니라 고백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공유의 모습을 보면서, 웬만한 밀당 이상의 심리극이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돌려 말하는 고도의 대화도 있지만, 김고은의 노골적인 돌직구 질문과 요구는 시청자의 마음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만든다. 모두 다 아는데 혼자만 모르는 김고은이, 모두를 위해 돌직구를 던진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 인간적인 면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는 도깨비와 저승사자
이번 회차는 서정성이 배경음악처럼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데, 죽음을 앞에 둔 공유의 변화가 눈에 띈다. 원래 도깨비 캐릭터는 인간에게 당하기도 하는 등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제3회까지의 도깨비는 냉철하고 위엄이 있었다. 도깨비가 아니라 그냥 신에 더 가깝게 느껴졌었다.
제4회가 되면서 도깨비가 일반적인 도깨비들이 가진 인간적인 면이 부각되기 시작됐다는 점은, 그리고 그런 정서와 마음에 한 회차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다는 것은 드라마가 가진 매력이다.
처음 봤는데 눈물 났던 써니(유인나 분)를 생각하는 저승사자도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다. 도깨비가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개연성의 측면에서 예상 가능하나, 저승사자가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은 접한 적이 없기 때문에 더욱 놀랍게 여겨진다.
아침 드라마 마지막 회를 본방사수하며, 막장 드라마의 내용에 사색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은 신선하다. 이런 면은 위엄을 하락시켜 시청자가 가진 감정의 틀을 깰 수도 있는데, 워낙 잘생긴 이동욱이라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도 신기하다. 배역과 이미지는 극의 몰입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도깨비’에서 김고은의 색은 빨간색으로 보인다. 첫 회부터 빨간 목도리를 했고, 이번 회에서 김고은이 묵은 스위트룸의 이불과 베개도 빨간색이다. 자신 앞에 잘 나타나지 않는 공유를 소환하기 위해 켠 초 중에도 빨간색이 보인다. 후드 티도 빨간색이다.
귀신은 빨간색을 싫어한다는 속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도깨비는 그냥 귀신이 아니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추측된다. ‘도깨비’에서 김고은을 보면 진짜 고3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재미있다.
‘도깨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연기자 육성재의 발견이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육성재의 활약이 점점 늘어난다. 기죽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보면, 육성재가 배우로서도 정말 큰 기대주라고 생각된다.
◇ 누군가의 죽음을 매회 맞이한다는 것은?
시청자는 매회 누군가의 죽음을 ‘도깨비’를 통해 맞이하게 된다. 자신은 죽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고통이라는 메시지에 대해 그것이 무슨 고통일까, 그 고통보다 영생을 살 수 있다는 혜택이 더 큰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시청자도 많을 것이다. 막연히 추측하는 것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짜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도깨비’에는 매회 죽음이 있다. 저승사자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보는 시청자들도 매회 죽음을 대면한다. 반복이 주는 축적의 힘은 정말 영생이 고통일 수도 있겠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만든다.
‘도깨비’는 매회 마지막 장면과 예고편에서 스포일러로 생각될 수도 있는 핵심적인 사항을 전달한다. 예전에는 막연한 궁금함에 시청자들이 한 주를 기다렸다면, 요즘 시청자들은 막연한 궁금함은 바로 잊어버린다는 것을 제작진들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도깨비’의 마지막 장면과 예고편은 시청자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일주일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본격적으로 추측하고 서로 이야기하는 작가로 만든다. 상상할 수 있는 시청자는 일주일을 더 행복하게 보낼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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