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ENT 영화] ‘잠깐만’(감독 김건영) 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22)

발행일자 | 2017.02.05 13:10

김건영 감독의 ‘잠깐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승균(홍승균 분)은 죽음을 결심한 순간에 삶에 대한 강한 욕구를 느끼고, 자신이 시도한 자살이 이대로 진행되지 않고 멈추기를 바란다.

정말 누군가가 날 도와줄 수 있는데 그냥 지나치려 한다면 그를 부르기 위해 ‘잠깐만’을 외칠 수도 있다. 나는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숙제를 하러 가야 한다는 민준(강민준 분)처럼 그 누군가는 당장 시급하거나 크게 중요하지도 않는 일로 나의 절박한 요청은 거부당할 수 있다.

‘잠깐만’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잠깐만’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 죽음을 결심한 순간에 찾아온 삶에 대한 욕구

승균은 죽음의 순간 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낀다. 결정의 순간에 바꾸고 싶고, 실행의 순간에 되돌리고 싶고, 나아가고 있을 때 뒤돌아보거나 유턴하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인간 본연의 마음 중의 하나일 것이다.

시간을 멈추고 싶은 마음, 진행을 멈추고 싶은 마음은 그간 많은 영화에서 표현됐다. 주변의 다른 모든 것은 정지해있는데 나만 움직일 수 있는 판타지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꾸준히 시연돼왔다.

‘잠깐만’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잠깐만’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그런데, ‘잠깐만’에서는 자신의 의지대로 시간을, 세상을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웃픈 장면들은 단순히 관객들을 웃기려 하기보다는, 절박한 순간은 어이없이 웃프게 지나갈 수 있다는 현실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 낙엽이 한창인 화려한 총천연색 가을! 자연환경과 묘하게 비슷한 승균!

‘잠깐만’을 보면 스크린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낙엽이 한창인 화려한 총천연색 가을에 나무 위에 매달려있는 줄은 무섭기보다는 아름다운 장식처럼 보일 수도 있다.

‘잠깐만’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잠깐만’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삶의 마지막은 총천연색으로 화려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잠깐만’에서는 낙엽이 섞인 초록의 푸름이 눈에 띈다. 잎이 떨어져 사라지기 직전에 아름답게 변하는 낙엽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을 나무 위에 승균이 매달려있다는 것 또한 웃픈 느낌으로 연결된다.

낙엽의 색깔이 붉게 변한 것처럼, 줄을 부여잡고 삶을 갈구하는 승균의 얼굴도 붉게 변한다. 자세히 보면 승균의 오른쪽 팔목에 있는 팔지는 낙엽처럼 여러 가지 색으로 구성돼 있다. 승균이 입고 있는 흰색 티는 하늘의 색과 같고, 검은색 바지는 줄이 매달린 나뭇가지의 색과 같다.

‘잠깐만’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잠깐만’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감독은 사이트 헌팅을 잘해 아름다운 자연을 우연히 얻은 것이 아닌 승균의 콘셉트와 일치된 장소를 찾은 것이다. 물론 장소를 먼저 찾고 승균 콘셉트의 디테일을 변경했을 수도 있는데, 막대한 자본력이 없이도 디테일을 잘 챙기면 이미지를 잘 살리는 멋진 장면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감독은 보여줬다.

◇ 악연을 끊고 싶을 만큼 세상이 재미없는 청년과 집에 가면 심심한 꼬마의 만남

낙엽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승균은 나는 오늘부로 이 세상과의 악연을 끊으려고 한다는 내레이션을 들려준다. 강민준은 집에 가면 심심한 아이 역을 맡아 말 그대로 진지하지 않은 듯한 연기를 펼치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짓는다. 아역배우가 아닌 정말 지나가던 꼬마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잠깐만’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잠깐만’ 스틸사진. 사진=제19회 한예종 졸업영화제 제공>

‘잠깐만’은 단편 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와 여운을 남긴 작품이다. 단 두 명만 출연하고, 로케이션이 크게 변하지도 않는다. 장소 헌팅에는 신경 썼지만, 큰 소품도 사용하지 않은 작품이다.

동적이라기보다는 정적인 스크린 속에서, 줄에 매달려있는 승균을 보며 마음 졸이게 되는, 움직임은 정적이지만 마음은 무척 동적인 작품이다. 복잡한 이야기를 담지 않고 단 하나의 이야기만 담고 있다. 단편 영화가 길어지면서 단편이 가진 함축적 매력이 줄어드는 추세에, ‘잠깐만’은 관객들을 ‘잠깐만’이라고 불러 세워 단편 영화의 초심을 보여준 작품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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