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아 감독의 ‘손의 무게’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소미(최배영 분)가 죽은 이유를 찾아 나선 사람들, 슬픔을 나누는 사람들은 공통점도 있지만 서로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다.
‘손의 무게’는 같은 상황이라도 보는 사람의 시야에 따라, 그리고 당사자인지 제3자인지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 소미가 죽은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 손의 무게는 얼마일까? 말의 무게는 얼마일까?
‘손의 무게’는 도로 위에 떨어져 있는 소미를 울먹이며 육교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지훈(윤지온 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소미가 죽은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영화는, 비밀이 없었는데 최근에 뭔가 숨기려는 것이 생겼다는 지훈의 내레이션을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손의 무게는 얼마일까? 말의 무게는 얼마일까? ‘손의 무게’는 감정과 감성을 깊이와 넓이로 표현하지 않고 무게로 표현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훈과 소미에 대해 학교의 모든 다른 사람들이 떼어낼 수 없는 커플로 여기는데, 소미는 지훈을 피한다.
소미는 화지(신우희 분)에게 지훈과 끝내겠다고 말하는데, 지훈과는 꿈에서도 싸우는데 꿈을 깨도 싸운다고 소미는 말한다. 부부 사이이든 애인 사이이든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에겐 정말 행복한 사이로 보이는 쇼윈도 커플이 정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손의 무게’를 보면서 다시 환기하게 된다. 심지어는 학생조차 쇼윈도 커플이 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로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붙어있는 것은 데이트 폭력, 부부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부모 세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답답해하던 청소년들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손의 무게’는 보여주고 있다.
◇ 한때는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가졌을 뿐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이 보는 관계와 두 사람 사이의 실제는 다를 수 있다. 부부 사이뿐만 아니라 애인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둘 사이에서만 보더라도, 한 사람은 둘이 같이 사랑한다고 당연히 생각하고 있을 때 다른 한 사람은 전혀 다른 마음으로 같이 있었을 수도 있다.
남녀의 심리를 다룬 독립영화에는 서로 사랑하고 교감하고 소통했다고 생각하지만, 남자만 그렇게 생각했고 여자는 한 번도 제대로 말이 통한 적이 없다는 내용을 다룬 작품이 종종 있다. 이런 종류의 작품들은 여자 감독이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남자 감독의 작품들도 많다. 늘 그런 생각을 하는 감독이 작품을 만들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깊은 깨달음의 아픔을 겪은 감독이 영화로 만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말 못하는 아픔을 가진 소미의, 지후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보며 사랑과 스토킹은 어쩌면 같은 출발점 또는 교차점을 가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처음부터 스토킹을 당한 것이 아닌, 내 마음이 떠난 이후 상대의 행동이 내게 스토킹이 되었다면 말 못할 아픔은 더욱 클 수 있다.
한때 마음을 준 적이 있다는 이유로 정리하지 못하는 소미의 마음에 공감하며 눈시울이 붉어질 관객들도 있을 것이다. 주변으로부터는 불편한 말을 들었을 것이고, 세상에는 날 이해하고 지지해줄 내 편이 아무도 없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손의 무게’에서 소미는 화지와 일기를 교환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사는 세상엔 절대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소미는 아버지(임학순 분)에게도 자신의 세상을 알려주지 못하는데, 이런 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상처이다.
◇ 혼자 있는 외로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같이 있는 괴로움
‘손의 무게’에서 감독은 남들이 부러워하지만 실상은 매우 괴로운 마음을 잘 캐치해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인간 내면의 깊은 곳 중 한 곳을 파고들고 있다. 혼자 있을 때의 외로움보다 같이 있을 때의 괴로움이 더 클 수 있다. 외로움은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괴로움은 위로를 가장한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손의 무게’는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감정선을 연결하는데,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뒤에도 긴장이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된다. 감정선을 이어가는 감독의 능력은, 감독이 앞으로 만들 장편영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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