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시트로엥 그룹(PSA)은 르노와 함께 프랑스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푸조와 시트로엥은 지난 1987년 수입차 개방 이후 우리나라에도 선보이며 초창기 수입차 시장에서 국내 고객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푸조와 시트로엥 모두 오래 버티지 못하고 한국에서 철수했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태생적 한계가 있긴 했으나 국내에서의 홍보나 마케팅 활동, 제품 전략 등에서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불모터스를 통해 푸조와 시트로엥이 국내에 다시 들어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시트로엥 C4 칵투스다. 지난해 월 평균 판매는 약 59대 정도. 올해는 월 평균 72대의 실적을 보이고 있다. 2000만원대 가격을 감안하면 다소 부진한 실적으로 보인다. 국산차와 비슷한 가격대의 이 차가 왜 판매 부진에 빠져 있을까.
외관은 참 독특하다. 주간주행등을 위에, 헤드램프를 아래에 배치한 개성 있는 모습에 라디에이터 그릴은 매우 작다. 마치 콘셉트카 같은 분위기다.
무엇보다 이 차의 가장 큰 특징은 차체 측면을 장식하는 에어 범프다. TPU 소재로 만든 에어 범프는 내부에 있는 공기 캡슐이 차체를 보호할뿐더러 다양한 색상 조합이 가능해 자신만의 개성 있는 차 꾸미기에도 도움이 된다.
실내 역시 참 독특하다. 직물로 이뤄졌지만 웬만한 가죽소재보다 고급스러워 보인다. 도어 트림 손잡이는 가죽으로 만들어 마치 가방을 잡는 느낌을 준다. 위쪽으로 열리는 글러브 박스 역시 가방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듯하다. 이러한 디자인이 가능한 이유는 시트로엥 고유의 루프 에어백 기술 덕분이다. 조수석 에어백이 천장에서 터지도록 했기 때문에 글러브 박스가 위로 열리는 게 가능해진 것.
파워트레인은 1.6ℓ 98마력 디젤 엔진과 수동 기반의 ETG를 조합했다. 기어 조작은 단순하다. 센터페시아 아래쪽에 달린 D, R, N 버튼을 눌러 선택하도록 했고, 항공기의 것 같은 두툼한 레버를 당겨 주차 브레이크를 걸도록 했다.
제원에서도 예상했지만, 주행성능은 평범하다. 차체는 크지 않지만 배기량과 출력의 한계가 있어 파워 있는 드라이빙을 즐기기에는 한계가 있다. 스포티함과 안락함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모호함은 이 차가 지닌 가장 큰 딜레마다.
특히 ETG 변속기의 이질감은 익숙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폭스바겐의 DSG가 상당한 수준의 부드러움을 구현하고 있는 데 비하면 아직도 울컥거리는 ETG 변속기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그러니 초보운전자나 운전이 서툰 이는 이 차가 예쁘다고 덜컥 샀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패들 시프트를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는 이라면 얘기가 약간 다를 수 있다. 엔진 회전수 특성을 파악해 차가 울컥 거리기 전에 시프트 업 또는 시프트 다운을 하면 그만이다.
복합연비는 17.5㎞/ℓ다. 하지만 나는 연비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자동변속기가 적용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과거 푸조 모델들도 연비를 강조하기 위해 ETG와 같은 메커니즘의 MCP를 썼지만, 고객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최근에는 자동변속기의 적용을 늘리고 있다. 자동변속기를 사용하면 고객층을 더 넓힐 수 있고 판매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푸조와 시트로엥을 수입하는 한불모터스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다. 2008 이후 오랜만에 주목을 받는 푸조 3008 덕분이다. 한때 법정관리까지 갔던 한불모터스로서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시트로엥의 위상이다. 현재 시트로엥 모델들의 가격을 보면 위치가 참 애매하다. 차의 만듦새를 보면 푸조보다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대부분 모델은 가격으로 승부하는 모양새다. “가격을 더 높게 받을 수 있는 하이 트림을 수입하는 게 어떠냐”고 한불모터스 동근태 상무에게 몇 차례 조언을 했더니, “더 비싸게 받고 싶지만 고객들의 가격 저항이 있다”는 답을 들었다. 내가 수입 담당자라면 시트로엥 만큼은 고가 전략을 취할 것 같다. 그렇게 해야 푸조도 살고 시트로엥도 살 수 있다. C4 칵투스의 판매 부진은 한불모터스의 전략 오류에도 원인이 있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파워트레인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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