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 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그때 기자는 충북 충주로 달려갔다. 볼보트럭 시승과 취재를 위해서였다. 당시 볼보의 대형 트럭 시승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서스펜션과 캡, 운전석 시트에서 3중으로 충격을 걸러내는 승차감은 최고급 승용차보다 훌륭했고, 높은 운전석에서 느껴지는 탁 트인 시야가 운전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다.
최근 만난 메르세데스-벤츠의 스프린터는 볼보 대형 트럭 시승 때를 떠올리게 한다. 11인승 프리미엄 밴인 스프린터는 지난 4월 서울모터쇼에 셔틀버스로 나와 처음 타봤는데, 이때는 1전시장과 2전시장을 오가는 짧은 코스에 동승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엔 와이즈오토홀딩스 측의 협조로 일반도로에서 마음껏 시승할 기회가 주어졌다. 11인승인 스프린터는 차체가 높아 시승 전에 약간 긴장됐다. 기아 카니발 같은 미니밴을 운전할 때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를 텐데,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대형 트럭만큼의 높이는 아니지만 차체높이가 2350㎜에 이르는 만큼 운전석에 오르는 건 다소 힘이 든다. 치마를 입은 여성이라면 더 불편할 것 같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의 높이는 대형버스와 비슷하거나 살짝 낮은 수준이다. 그만큼 높은 위치에 있어 시야가 탁 트인 느낌을 받는다.
대시보드는 그리 화려하지 않고 실용적인 기능만 모았다. 벤츠 승용차에서 보던 스티어링 휠과 계기반이 친숙한 느낌을 준다. 내비게이션은 지니 맵을 쓰는데, 해상도가 낮을뿐더러 내비 이외의 기능을 쓰기에 썩 편치 않다. 특히 블루투스 기능을 쓰려고 몇 번을 시도했는데 실패했다. 오디오와 내비게이션은 좀 더 좋은 제품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겠다.
파워트레인은 6기통 2987㏄ 190마력 디젤 엔진과 7단 자동변속기가 짝을 맞췄다. 이 정도 출력이라면 움직임이 다소 둔하지 않을까 하고 예상하기 마련.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발진 가속과 추월 가속 때 답답한 느낌이 거의 없고, 엔진 소음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보통 엔진 출력이 부족할 경우 수동모드를 활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차는 그럴 필요도 별로 없다. 차체에 걸맞은 출력과 토크를 갖춘 게 인상적이다.
연비도 예상외로 좋았다. 평균시속 43㎞로 달렸을 때 리터당 8.2㎞를 기록했고, 평균시속 38㎞였을 때는 6.9㎞/ℓ가 나왔다.
승차감은 무난하지만 요철을 만나면 뒷바퀴가 다소 튄다. VIP를 태운 경우라면 약간 주의를 할 필요가 있겠다. 대신 운전석은 웬만한 요철을 만나도 시트에서 충격을 흡수해주는 덕에 꽤 안락하다. 특이한 점은 운전자의 몸무게에 따라 쿠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딱딱하거나 혹은 너무 출렁거리는 승차감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시승하던 날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졌는데도 주행안전성은 꽤 높았다. 차체가 높은 탓에 측면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차체가 약간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는데, 불안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는 다임러 벤츠 특유의 측풍 어시스트 기능이 자세를 자동으로 제어해주는 덕분이다.
과거에도 국내에는 카니발, 코란도 투리스모 같은 11인승 미니밴이 있었으나 11명이 다 타기에는 공간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스프린터는 11명이 훨씬 넉넉하게 탈 수 있다. 물론 마지막 열 시트의 좌우 좌석은 레그룸이 조금 좁은 느낌이 있으나 그런 점을 감안해도 기존 미니밴보다는 공간 활용도가 훨씬 좋은 편이다.
특히 시트 배열에 따라서 캠핑카나 리무진카, VIP용 자동차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 앞으로 수요가 꾸준하게 늘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지난 4월 서울모터쇼에서 쏠라티를 내놨을 때 관람객들이 높은 관심을 보인 것도 이를 방증한다.
벤츠 스프린터는 옵션에 따라 6가지가 나오고 가격은 7480만~1억1990만원이다. 기자가 이번에 시승한 차는 8987만원의 유로코치 비즈니스 모델이다. 각 모델의 파워트레인은 똑같고, 내부 사양에 따라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
경쟁차인 현대 쏠라티 11인승 투어 럭셔리 모델의 경우 7750만원으로 기자가 시승한 차와 약 1100만원 정도 차이가 나는데, 이 정도라면 구매할 때 충분히 고민할 만한 가격차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 보디 빌더인 와이즈 오토홀딩스는 오는 10월에 더욱 고급스러운 사양을 갖춘 VIP 모델과 VVIP 모델을 추가해 선택의 폭을 넓힐 계획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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