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488 스파이더는 ‘리틀 페라리’ 라인업 중 가장 위에 자리하는 고성능 모델이다. 1975년 출시된 306 GTB의 타르가톱 버전 308 GTS 계보를 잇는 차가 이번에 만난 488 스파이더다.
488 스파이더의 쿠페 버전은 488 GTB인데, 이 차의 전신은 458 이탈리아다.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범블리와 함께 중동의 불법 핵시설을 습격하는 ‘디노’가 바로 이 458 이탈리아였다.
488 스파이더는 458 이탈리아 부품의 85%를 바꿔 만들었지만, 실은 458 이탈리아의 뿌리에서 나왔다. 458 이탈리아의 코드네임이 F12, 488 GTB는 F12M(Modification)이라는 게 그 증거다. 휠베이스(2650㎜)와 차체 높이(1215㎜)도 두 차가 똑같다. 공차중량은 1595㎏으로, 488 GTB보다 50㎏ 무겁고 함께 시승한 포르토피노보다는 110㎏ 가볍다.
인제스피디움의 시승에 앞서, FMK는 서킷 라이선스를 취득할 것을 요구했다. 물론 10만원에 이르는 라이선스 취득비는 자비로 부담한다. 많은 브랜드들이 라이선스도 없는 초짜 기자들을 서킷에 드나들게 해 불편을 주는 반면, FMK는 회사 이름처럼 FM 같이 운영한다. 기자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실은 이게 제대로 된 거다.
488 스파이더의 앞모습은 압도적이고 옆과 뒤는 섹시하다. 톱을 열고 닫아야 하기에 488 GTB와 달리 투명 엔진룸 커버는 없다.
뱅크각 90도의 V8 엔진은 미드 리어에 자리한다. 최고출력 670마력은 8000rpm에서 찍고, 최대토크 77.5㎏·m는 3000rpm에서 뿜어낸다. 높은 회전수에서 최고출력을, 낮은 회전수에서 최대토크를 내는 이상적인 엔진이다.
488 스파이더의 극적인 변화로 꼽을 수 있는 건 다운포스 성능이다. 차가 높은 속도로 달릴 때 공기의 흐름을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다운포스 성능이 높으면 주행안전성을 높이는 데 유리해진다. 오래 전 나왔던 360 모데나는 시속 200㎞로 달릴 때의 다운포스가 80㎏이었는데, F430은 120㎏으로 올라갔고 458 이탈리아는 140㎏로 높아졌다. 488 스파이더의 쿠페 버전인 488 GTB의 다운포스는 무려 200㎏이다. 페라리의 매끈한 차체가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건 이런 데서 알 수 있다.
페라리 개발진은 단순히 다운포스를 높이는 것에만 골몰하지 않고, 톱을 열고 달릴 때의 쾌적함을 위해 세 가지 위치로 조절되는 전동식 윈드 디플렉터를 달았다. 물론 이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서킷에서는 톱을 닫고 달렸지만, 고속도로에서 톱을 개방하니 역시나 바람이 많이 들이친다. 시승을 했던 날처럼 바람이 많이 불면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DCT)는 높은 엔진회전수를 가뿐하게 받아내고, 수동 변속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어가 착착 물린다. 변속 타이밍을 맞추기 힘들었던 페라리는 이제 옛날 얘기가 됐다.
패들 시프트는 스티어링 칼럼에 고정된다. 이 때문에 회전 중에 패들 시프트를 조작할 때 손가락이 잘 안 닿아 불편할 때가 있다. 패들 시프트가 길게 설계돼 있기는 하지만, 스티어링 조작 방향으로 같이 움직이면 훨씬 더 편할 듯하다.
페라리 특유의 배기음은 여전하다. 포르쉐의 ‘우르릉’ 거리는 소리와 달리 다소 높은 음색의 카랑카랑한 배기 사운드는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실은 나는 터보 엔진보다 자연흡기 엔진을 병적으로 좋아한다. 자연흡기 엔진의 고회전 감성을 터보 엔진이 따라온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디젤 터보 엔진이 저단 기어부터 팍팍 치고 나가는 느낌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한데, 이 차는 예외다. 영리하게도 1~2단에서 토크를 의도적으로 눌러 자연흡기 엔진 흉내를 냈다. 니켈 합금 대신 티타늄·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터빈은 마찰저항이 줄어든 덕에 맹렬하게 돌아간다.
높은 다운포스와 앞뒤 41.5:58.5의 무게 배분은 경주차 수준의 민감한 핸들링을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오랜만의 페라리 서킷 주행으로 손에 땀이 찼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땀은 사라지고 재미만 남는다. 머릿속으로 그리는 코너링 라인 그대로 따라오는 488 스파이더가 이렇게 예쁘고 기특할 수가 없다.
물론 어설픈 운전자라면 순간의 실수로 차체를 제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브랜드가 운전자의 실력을 고려하지 않은 탓에 그룹 드라이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데, 페라리는 이런 것까지 고려해 차 한 대씩만 서킷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속도를 못내는 앞차에 갑갑해 할 일도 없었고, 따라오지 못하는 뒤차를 원망할 일도 없었다.
488 스파이더의 인증 연비는 도심 6.7㎞/ℓ, 고속도로 9.0㎞/ℓ, 복합 7.5㎞/ℓ다. 콘셉트가 다르긴 하지만, 위급의 GTC4 루쏘 T(복합 7.0㎞/ℓ), GTC4 루쏘(5.2㎞/ℓ), 812 슈퍼패스트(5.6㎞/ℓ)보다 훨씬 연비가 우수하다.
그러면서도 정지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3.0초로 GTC4 루쏘(3.4~3.5초)보다 빠르고, 812 슈퍼패스트와는 불과 0.1초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연비와 가속성능을 두루 감안한다면 페라리 라인업 중 최고다.
488 스파이더의 가격은 3억 후반에서 시작한다. 시트 디자인과 내장재 소재와 색상, 외장 부품 등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가격표가 달라진다.
페라리는 차만 덜렁 팔아놓는 메이커가 아니다. 전문 강사진이 드라이빙 스킬을 가르치는 코르소 필로타(Corso Pilota) 교육 과정이 4단계로 마련돼 있다. 모든 교육을 마치면 페라리 챌린지 레이스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하루 동안 서킷과 공도를 오간 이번 시승은 엑기스가 진했다. 488 스파이더는 엄청난 매력을 소유한 탓에 시승자의 마음을 뒤흔들고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 ‘악명 높은 악당(A Notorious Rascal)’이라는 별명을 붙이면 어떨까.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파워트레인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파워에 섹시함을 더했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타는 차.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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