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감독의 ‘윗층의 꼬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동생 현수(성지민 분)를 이 세상에서 떠나보낸 누나 연주(김소라 분)는 동생의 장난감을 버리려고 하고, 이를 안 엄마(주혜원 분)는 슬픔에 북받쳐 화를 낸다.
◇ 같은 물건에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누군가에겐 사라진 아들을 기억하게 해주는 아들의 분신이고, 누군가에겐 이젠 잊어야 할, 이젠 놓아줘야 할 기억의 물건이다. 누군가에겐 그냥 진짜 갖고 싶었던 장난감일 수도 있다.
실제의 상황이면 위층의 꼬마 지호(엄유찬 분)를 보며 현수가 떠오를 수도 있다. 지호를 본다는 것 자체가 마음 아플 수도 있다. 그런데, ‘윗층의 꼬마’의 지호는 현수의 물건에 다른 의미를 부여해 결국 현수를 다르게 기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현수의 장난감을 찾아오기 위해 지호와 놀아준 연주는, 결국 현수가 돼 지호와 놀아준 것으로 볼 수도 있고, 현수와 논 것처럼 지호와 놀아 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무겁고 마음 아픈 기억을 한 발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만든 감독은, 슬픔을 회피하기보다는 또 다른 방법으로 위로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상실의 시대, 기억마저 잊힐까 두려운 사람들
상실의 시대에 누구나 아픔을 겪고 살아간다. 특히 자식이나 본인보다 어린 동생을 잃은 가족은 슬픔과 함께, 누가 뭐라고 하지 않더라도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삶을 송두리째 감싸고 있는 슬픔은 특정한 사람들이 일정 시기 동안 겪을 것 같지만, 앞으로 다가올 그 사람과 가족들의 삶을 모두 좌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 주변의 슬픔을 나누며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밑층 누나와 윗층의 꼬마가 아닌, 밑층 오빠와 윗층의 꼬마였으면?
‘윗층의 꼬마’에서 연주는 지호와 친구처럼 놀아준다. 그러면서 지호를 대하는 마음은 이모나 엄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밑층 오빠와 윗층의 꼬마였으면 정서가 어떻게 변했을까?
인형을 가지고 놀아주는 오빠와 윗층 꼬마는 친구 같은 느낌이 ‘윗층의 꼬마’에서만큼 생기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이는 단지 시나리오 상에서의 가정에서 머물지 않고, 실제로 현실에서 확장하면 더욱 현저한 차이를 낼 수 있다.
슬픔을 공감하고 위로한다는 것은, 제3자가 봤을 때는 일정 범주 내의 같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미세한 차이는 당사자에게 무척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설픈 위로는 오히려 공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강산 감독은 남자 감독인데 ‘윗층의 꼬마’에서 소녀의 감성과 꼬마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케미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연출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밑층 오빠와 윗층 꼬마였으면 감독은 어떻게 정서와 감정을 풀어냈을까 궁금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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